[같이걷는가게] 당신의 건강한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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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4-05-10 11:38
- 조회12,88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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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걷는가게 #8 마디튼튼의원
지파운데이션에는 도움을 주는 자와 받는 자가 구별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매월 정기적으로 나눔을 실천하며 지파운데이션과
같이 걷고 계신 후원자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중 카페, 음식점, 학원 등 다양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계신
후원자님들의 나눔 이야기를 "같이걷는가게"를 통해
후원자님께 전달해 드리려고 하는데요.
그 여덟 번째 주인공은 <마디튼튼의원>의 심효선 후원자님입니다.
몸과 마음이 상처 입은 분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전하는 사장님의 이야기.
한번 만나보실까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방사능 방진복을 입고 계신 후원자님>
안녕하세요, 저는 자양동에서 마취통증의학과로 개업해서
환자를 보고 있는 심효선이라고 하고요.
딸만 셋인 딸부잣집에서 ‘아빠’를 맡고 있습니다.
의사라는 꿈을 꾸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희 어머니의 아버지, 그러니까 제 외할아버지께서 원래는 의대에 합격하셨는데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의대를 포기하고 경찰대에 가셨어요.
그런데 저희 어머니께서는 당신 아버지가 의사를 포기하신 게 한이 되셨나 봐요.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저한테 그런 얘기를 많이 하셨고
자연스럽게 제 장래 희망도 의사가 되었습니다.
원래 어린 시절엔 꿈이 많이 바뀐다고 하는데
신기하게도 저는 국민학교 때부터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어요.
그리고 이렇게 꿈을 이루게 되었답니다.(웃음)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하셨을 때, 어머니 반응은 어떠셨나요?
굉장히 좋아하셨죠! 지금도 여전히 되게 좋아하시고요~
딱 의사가 됐을 때 정말 많이 우셨어요.
우리 가족 중에 저 말고는 의사가 한 명도 없거든요. 정말 개천에서 용 난 거였죠.
제가 의사가 되고 나니까 이제는 부모님이나 누나들이 아플 때도 제가 알고 봐줄 수 있으니까 좋아요!
이번 겨울에 어머니 손목이 골절되셨었는데 그때도 제 아는 친구들 다 연결해드렸었거든요.
그럴 때면 그렇게 해드릴 수 있어서 감사하고 보람도 되는데
일이 바쁘다보니 찾아뵙지도 못하고 연락도 자주 못 드리는 게 죄송스럽죠.
이번 인터뷰가 올라가면 핑계 삼아 연락드릴까 해요!
아들이 인터뷰도 하고 인터넷에 사진도 올라갔다고요.
아마 엄청나게 좋아하실 거예요!(웃음)
레지던트 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저희가 종종 마취과에서 외과 중환자실로 파견을 보내는데
출산 중, 다발성 출혈로 들어오신 여성분이 계셨어요.
수술도 서너 번 하시고 의식도 없으셔서 거의 희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돌아가시면 남게 될 아이가 너무 걱정스럽더라고요.
본인을 낳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되면 아이 마음이 어떻겠어요?
그래서 ‘꼭 사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중환자실에서 한 달 정도 그분을 돌봤는데 놀랍게도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시더니
결국에는 퇴원해서 병실까지 가셨어요.
처음 병원에 들어오셨던 모습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회복되셔서
굉장히 보람찼고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로맨틱한 에피소드도 있으셨다고요?
사실 제가 사내연애를 했거든요. 제가 레지던트 3년 차 때, 아내가 같은 마취과 신규 간호사였어요.
제가 근무했던 병원은 좀 보수적인 편이어서 같은 과 안에서 연애를 하는 게
해고 사유가 되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정말 친한 사람들한테만 말하고
손도 몰래 잡고, 데이트도 몰래 하고 했었어요.(웃음)
1년 정도 교제 후, 결혼하게 됐는데 결혼 발표날 병원이 아주 난리가 났던 기억이 나요.
어쩜 그렇게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냐고 꿈에도 몰랐다고요!(웃음)
결혼한 지도 벌써 올해로 15년 차 정도 되었는데, 그동안 아내가 참 많이 고생했어요
많이 힘들었을 텐데도 늘 묵묵히 곁에서 자리를 지켜주는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병원을 운영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환자분이 있으실까요?
우리 병원에 오시는 환자분들은 평균 연령이 70대 초반인데
어르신들이 저희를 정말 잘 챙겨주세요.
바나나도 갖다주시고 직접 캐신 것 같은 장뇌삼도 갖다주시고.
또 제가 화장실을 자주 가는데 화장실이 병원 밖에 있다 보니까
제가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걸 환자분들이 보시고 장이 안 좋다는 걸 아신 거예요.
그래서 장에 좋은 요플레를 한가득 갖다 주세요!
이렇게 굉장히 가족 같고 시골처럼 정감 있는 병원인데
한 어머님이 굉장히 기억에 남아요.
제가 전에는 일요일에도 근무했었거든요.
아내랑 둘만 나와서 진료를 했는데 둘 밖에 없다 보니 좀 많이 바빴습니다.
근데 그럴 때면 그 어머님이 오셔서 접수부터 안내까지 교통 정리를 해주셨어요.
부부가 다 우리 병원에 다니셨는데 자식들 대하듯 저희를 잘 챙겨주셨어요.
저희 직원들 다 데려가서 갈비도 사주시고 생선구이도 사주시고.
어머님이 한 2년 정도 되게 열심히 오셨는데 척추 골절 이후,
증상이 악화되어서 결국 돌아가셨거든요.
정말 어머니처럼 챙겨주셨던 분이라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근무하시며 가장 보람을 느끼실 때는 언제인가요?
병원에 방문한 환자들을 수술 없이 낫게 할 때 가장 보람된 것 같아요.
사실 우리 병원은 지리적으로도 중심가에 있지 않고, 광고도 안 하거든요.
그래서 대부분의 환자분은 전에 방문하셨던 분들의 추천을 받고 오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중 대다수가 디스크 환자들인데 수술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진단을 받으신 분들이
주위에서 ‘거기 가서 주사 한번 맞아봐라’라는 이야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오시거든요.
수술하게 되면 기본적으로 돈도 문제지만, 회복하기까지의 기간도 엄청나고
어르신들은 수술 때문에 활동의 제약이 생기니까 신체의 다른 기능들도 떨어지게 되거든요.
그렇기에 더 위험부담이 큰데 수술 없이 주사로 끝내드리면 정말 좋아하세요.
제 부모님께 하듯 환자분들을 대하다 보니 그렇게 좋아하시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많이 느낍니다!
함께 일하신 직원분들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으시다고요?
지금 함께 일하고 있는 직원들은 총 3명인데 다 초창기 멤버들이에요.
직원들이 우리 병원에 대한 애정이 커서 환자도 더 받자고 하고,
원장님 아프시면 안 된다고 자기네들 계속 여기에서 일해야 한다고 하고.(웃음)
서로 많이 아끼고 좋아하는 가족 같은 사이입니다.
근데 사실 직원들이 매우 힘들 거예요. 우리 병원이 환자가 꽤 있어서
셋만 일하기에는 벅찬데, 병원이 좁아서 지금도 둘이 데스크에 앉아 있으면
한 명은 뒤에 가서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미안할 때도 많은데, 불평도 안 하고 즐겁게 일해줘서 참 고마워요.
곁에 있어서 참 든든하고 소중한 친구들입니다.
환자분들에게 어떤 의사가 되고 싶으신가요?
저는 처음 의사가 됐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어르신들이 병원에 찾아주시면
제 부모님이 오셨다고 생각하면서 진료를 보거든요.
환자분들한테도 늘 ‘제 어머니, 제 아버지셨다면 이렇게 말했어요’ 하면서 진료를 해요.
환자가 제 가족이라면 치료할 때도 최선을 다해 노력할 거잖아요?
그래서 치료할 때 늘 그런 마음가짐으로 환자들을 이끌어요.
제가 그렇게 마음을 다하면 환자들도 많이 믿고 따라와 주시거든요.
그래서 저는 우리 아버님, 어머님들하고 같이 나이 들면서
가족 주치의 같은 그런 의사로 남고 싶어요. 욕심은 별로 없어요.
때로는 아빠 같고 때로는 아들 같은 좋은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세 따님과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려고 하시나요?
아이들이 올해로 각각 5학년, 중1, 중2인데 병원 일이 많이 바쁘더라도
최대한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오히려 저에게 힐링이 돼요.
최근에는 제 생일이었는데 아이들이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준비한 거예요!
풍선도 잔뜩 불어서 꾸며놓고 선물도 준비했는데
상자를 열면 안에 또 상자가 있고 또 상자가 있고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뽑기가 들어있는데 뽑으면 ‘다시 한번만’ 이런 게 계속 있어요.(웃음)
어떤 거는 ‘사랑해요’라고 써있었는데 그런 것들을 통해서 아이들한테 위로를 많이 받아요.
근데 이제 아이들이 다 사춘기니까 달라지는 건 있는 것 같아요.
큰 애는 자라면서 엄마하고 더 친해졌고요. 둘째가 원래 저랑 엄청 친해서 껌딱지처럼 붙어 다녔는데
한 5학년 넘어가니까 슬슬 내외하더라고요, 지금은 막내랑 제일 많이 붙어 다니죠.
며칠 전에도 둘이서 부산 갔다 왔는데 슬슬 막내도 ‘아빠, 나 이번 주 토요일 날 친구랑 놀거야’ 하면서
친구들이랑 어울리기 시작하더라고요.
좀 섭섭하긴 하지만, 그러다가 또 언젠가는 돌아와 주겠죠?(웃음)
이제 후원에 관련된 질문을 드려보려고 해요!
후원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확실히 부모님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어머니께서 제가 어렸을 때부터 기부나 봉사를 많이 하셨었는데
그렇다 보니까 나누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또 제가 어릴 적에 이모가 보육원에서 일하셨거든요. 꽤 오래 근무하셨는데 1~2년에 한 번은
이모가 계신 보육원에 가서 거기서 지내는 아이들이랑 많이 놀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시설이 아주 열악했던 터라 인원도 아주 많았고 간식도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저도 어린 나이였지만, 제가 지내는 환경보다 좋지 않은 환경에서 지내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보니까 ‘나는 그래도 좋은 환경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중에 크면 그런 친구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어서 자연스럽게 해당 분야로 후원을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많은 후원단체 중 지파운데이션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딸이 셋이나 있기도 하고 제가 어렸을 때 보육원에 대해 보고 느꼈던 것들이 있다 보니
우리 딸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 가족들과 지내는 행복한 시간을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을 돕고 싶었어요.
그렇게 찾다 보니까 또 생리대 후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깔창 생리대에 대한 걸 뉴스 기사로도 접했는데
지파운데이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보니까 정말 필요한 일이더라고요.
우리 집은 여자만 넷이다 보니 생리대라는 게 정말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걸 알잖아요?
그 기본적인 것조차도 힘든 아이들이 너무 많다고 하셔서
생리대 후원과 보육원 아동 쪽 지원에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
그 두 사업을 지파운데이션에서 잘하고 계신 것 같아서
생리대 후원과 보육원 아동결연을 같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후원자님께서 결연 아동에게 보내주신 선물>
그런데 신기하게 결연으로 매칭된 아동이 저희 막내딸이랑 동갑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우리 집 넷째라고 종종 얘기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막내 거 뭘 살 일이 있으면 ‘동갑인 그 친구도
이거 필요하겠다’ 싶어서 같이 사게 되는 것 같아요!
<결연아동이 후원자님께 보낸 편지>
이제 고학년이 되니까 큰 책가방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지파운데이션에 문의드렸었는데
아이가 운동화가 갖고 싶다고 했다고 하셔서 운동화를 보냈었어요.
지파운데이션은 카카오톡도 그렇고 이메일 같은 소통이 바로바로 잘 되어서 더 좋아요!
후원하고 계신 대상자분들에게 응원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그 친구들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에게 관심 가져주는 사람이 없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면 정말 힘들잖아요?
그 친구들이 ‘이 사회에 있는 누군가는 그 친구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도우려고 한다’는 걸 알고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지파운데이션과 같이걷는가게로 함께 하게 되신 소감과 다짐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좋은 기회로 후원도 하고 인터뷰까지 하게 돼서 되게 자긍심을 느끼고요.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힘내보겠습니다.
또 더 많은 분이 지파운데이션과 같이걷는가게로 함께하실 수 있도록
주변에도 많이 전파할게요! 감사합니다!!